우리아파트 상가엔 식료품 가게가 두개 있다. 정확히는 두개가 있었다가 맞을듯 하다..

하나는 지하에 위치한 꽤 규모있는 수퍼마켓이고 하나는 예전 CVS 점을 개조해서 만든 전자의 1/3만한 가게다.

(이제부터 수퍼와 구멍가게라 칭하겠다).

수퍼가 먼저 생겼고, 구멍가게는 그자리에 있던 CVS 점이 문을 닫자 어느 내외가 1년전 쯤에 자리를 틀었다.

난 처음에 구멍가게를 보면서 "저 아줌마 아저씨 곧 망하겠네. 왜 바로 지하에 수퍼가 있는데 무리하게 가게를 냈을까?" 란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하 수퍼엔 외제 향신료를 비롯해서 상품이 무척이나 다양하고 많은데다, 때가 되면 할인행사도 부지런히 하곤 했다. 마케팅용어로 번들링이나 패키징도 곧잘했고, 할인쿠폰과 제휴 포인트, 게다가 마일리지와 같은 로열티 프로그램도 부지런히 수행했었고, 우리 아파트 뿐만아니라 길건너 다른 아파트에서도 단골로 오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최근 아파트 상가내에 있는 상점들이 다 그렇듯, 대형 유통 매장으로 인해 적잖게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 아파트만해도 차를 가지고 여러시간을 걸려 쇼핑을 해야 하는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몇 정거장을 가야하는 적잖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주말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대형 매장을 다녀오곤 한다.

문제는 최근에 롯데마트가 생기고 난뒤부터 시작됬다.

롯데마트가 생긴뒤부터 지하수퍼의 야채와 고기들은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점점 재고가 늘어나면서 회전율이 나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옆 구멍가게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구멍가게는 그 적은 공간안에 급할때 찾을만한, 그리고 신혼부부들이 먹고 소비할 만한 물건들을 많이도 아니고 2~3개씩 구비하면서 점차로 물건의 가짓수를 늘려 나가고 있었다.

특별한건 이 구멍가게에서 그때까지 손을 잘 대지 않았던과일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딱, 두 상자씩만 가져다두기 시작했고, 품질도 좋았다... 물론 아주 조금씩 팔기도 했다.

지하수퍼에 가끔씩 들를라 치면 주인은 낮잠을 자고 있던지,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그런 수퍼에 나조차도 가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하수퍼는 지속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주인을 바꿔가며 장사를 줄여가고 곧 새주인을 맞이할 것이다.


웃긴건 구멍가게 아저씨는 60이 훨씬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고, 수퍼는 40대의 중년 부부가 부지런히 운영하는 가게였다.

대형 유통 매장이라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가장 컸겠지만...

왜 지하 수퍼의 주인은 구멍가게의 전략을 이용하지 못했을까?

왜 계속 대규모로 청과물과 고기들을 들여놨을까?

왜 빨리 특화 상품들을 들여놓고 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못했을까?

왜 분명히 대형마트가 챙기지 못하고 있는 부분, 즉 지리적 잇점과 개폐점 시간,그리고 고객에 대한 insight와 relationship이있다는 것을 인지 하지 못했을까?

어쩜 현재 내가 지하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는 수퍼의 주인이 아닐까?

"전투에서 병력은 전력의 중요한 잣대이지만...

작은것이 늘 불리한것은 아니다. 작기때문에 가질 수 있는 전략적 우위가 있다.

빠르게 쉽게 변하는 것...커다람이 채우지 못하는 빈공간..이것을 잘 살려야 하는데너는 그것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몇달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내게 해준 충고였다.

나는 오늘에서야 그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의 전략적 우위는 무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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