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겨울부터 1997년가을까지 통계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논문을 마치고 졸업할때까지 
제가 선생님께 배운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연구하는 일에 치열할 것, 둘째는 공부한 것을 이론으로 끝내지말고 반드시 사회의 다른 분야에 응용하여 기여할 것, 마지막으로 공부나 사회 기여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유롭고 행복할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걸어오신 깊고 넓은 학문적 궤적을 보면 학자가 지녀야할 치열함은 이미 증명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랜기간 공식통계연구회나 노무현 정부시절 국가통계특위 위원장활동으로 통계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해야하는지 직접 몸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이미 70여명의 제자들이 학교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통계학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애초에 공부에 자질이 없으나 인터넷을 엄청 좋아하던 제게, 앞으론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을 하게되는 날이 올거라며, 인터넷을 활용한 통계적 데이터 아카이브에 관한 논문을 쓰게 해주시고, 이후 인터넷 업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심에 둘째도 확실히 증명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얼마전에 저는 검색을 하다가 선생님께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어딘가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고 계시는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한참동안 기쁜 마음으로 보면서, 그 사진속 모습이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가르쳐주셨던 자유롭고 행복한 한 인간의 모습을 명확히 증명해주는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1997년의 어느 가을날 ‘논문세미나’시간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강의실에 들어오셔서, 네이만(Jerzy Neyman)교수(현대 통계학의 근간이되는 검정, 신뢰구간의 개념을 정립한 통계학자)를 님과의 인연, 그리고 그분의 업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교탁에 놓여진 전기에 손을 내려놓으시고는 창밖을 보시면서, 네이만 교수님께서 단순히 학문적 업적만 훌륭한 분이아니라, 당시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버클리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기에 앞장섰고, 사회적인 문제에도 귀를 기울였던 분이셨다고 말씀 하셨던게 기억납니다.  

 또한, 피터 제이 비켈(Peter J. Bickel)이나 에리히 레오 레만(Erich Leo Lehmann)과 같은 저희는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당대 최고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제가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와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이었죠? 선생님의 은사님이셨고, 당시 UC Davis에 계셨던 베란(Rudolf Beran) 교수님을 뵈었는데요. 논문이나 통계용어집에 있던 전설적인 분을 직접 뵈었다는게 그저 신기하고 가슴 떨렸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 두 분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 선생님께서는 두 분이 이룬 학문적 업적보다는, 두 분의 인품이나 삶에 대한 이해와 통찰에 대해 경외감 어린 표정으로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선생님, 이제는 다시 강의실에서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선생님께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기까지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이미 선생님께서는 그 전설의 일부가 되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믿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그 전설 같은 이야기가 끝이아니라 이제 시작임을, 그래서, 선생님께서 더이상 강의실에 계시지 않더라도 저희들이 그 전설같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선생님께 건강과 하느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하며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자 전성훈 드림



2018. 3. 5. 14:39